실제 모녀 사이인데, 영화에서도 모녀로 출연한 두 여배우


1960년대 스크린을 화려하게 수놓던 이름, 김보애.

서구적인 미모와 관능적인 분위기로 ‘한국의 마를린 먼로’라 불리며 수많은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연극 무대에서 시작해 1956년 영화 옥단춘으로 데뷔한 뒤 고려장, 간난이, 수렁에서 건진 내 딸 등 숱한 작품에서 강렬한 존재감을 남겼다.

한국 최초의 화장품 모델로 광고계에 새로운 길을 열었고, 시집과 에세이를 출간하며 문학적 활동까지 이어갔다.

심지어 한때는 종업원 100명을 거느린 대형 식당을 운영하며 억대 재산을 모으기도 했다.

인생이 곧 드라마였던 인물, 김보애였다.

김보애의 삶은 겉으로만 보면 늘 화려했지만, 그 안에는 파란만장한 사연이 숨어 있었다.

대배우 김진규와 사랑에 빠져 결혼했으나, 갈등 끝에 결국 이혼이라는 선택을 해야 했다.

그러나 인연은 그렇게 쉽게 끝나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김진규가 병으로 기울어갈 무렵, 김보애는 다시 그의 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결국 임종의 순간까지 함께하며 마지막을 지켰다.

그 여정 속에서 김보애는 아내로서, 또 배우로서 한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가장 큰 기쁨과 슬픔을 모두 안아야 했다.

특히 말년에 사랑하는 딸 김진아를 먼저 떠나보내는 아픔까지 감당해야 했으니, 그녀의 삶이 얼마나 무겁고도 깊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김보애의 딸 김진아 역시 부모의 끼를 이어받아 배우로 활동했다.

서구적인 외모와 당돌한 매력으로 1980년대 스크린에서 주목받았던 김진아는, 1984년 영화 수렁에서 건진 내 딸에서 어머니와 실제 모녀로 호흡을 맞췄다.

스크린 속 모녀가 현실의 모녀와 겹쳐지며 더 큰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김진아는 2000년 미국인 사업가와 결혼해 하와이로 건너간 뒤 불치병과의 긴 싸움을 이어갔다.

결국 2014년, 향년 51세로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상을 떠났다.

그때 어머니 김보애는 방송에서 “내가 먼저 갔어야 했다”며 죄인의 심정으로 눈물을 쏟았다.

자식을 앞세운 부모의 마음은 그 어떤 언어로도 다 담을 수 없었다.

이후 김보애는 딸의 죽음을 애도하며 늘 촛불을 켜놓고 살았다고 고백했다.

“밥을 먹다가도, 자다가도 딸이 생각나면 촛불을 켠다”던 그녀의 말에는 깊은 그리움과 슬픔이 묻어 있었다.

2014년 딸을 떠나보낸 지 4년 뒤, 김보애도 뇌종양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향년 78세.

생전 그는 회고록 『내 운명의 별 김진규』를 펴내며 자신의 삶과 한국 영화계를 기록으로 남겼고, 무대와 스크린, 문학과 사업까지 쉼 없이 살아냈다.

모녀는 결국 몇 해 간격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두 사람이 함께한 영화 수렁에서 건진 내 딸은 여전히 한국 영화사의 특별한 장면으로 남아 있다.

어머니와 딸이 함께 남긴 흔적, 그리고 그 뒤에 이어진 슬픈 이별은 지금도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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