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증권사 사장, 어머니는 교사인데.. 배우하겠다고 우겨서 10년간 손절당한 연예인


배우 공형진은 연예계에서 ‘마당발’로 알려졌지만, 그의 뿌리를 들여다보면 의외로 정통 엘리트 집안 출신이다.

아버지는 법대와 경제대학원을 졸업하고 대신증권 사장을 지낸 금융계 인사였으며, 어머니는 사범대를 나와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했다.

부모는 자녀 교육을 위해 평창동으로 이사할 정도로 교육열이 높았다.

누나와 동생은 부모가 바라는 대로 안정적인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하지만 장남인 공형진은 달랐다. 재수를 거쳐 중앙대 연극영화과에 지원했고, 처음엔 연출 전공을 핑계 삼아 부모를 설득했다.

‘교수가 되겠다’는 말에 아버지는 열흘간의 고민 끝에 단 한마디를 남겼다.

“네 인생이니까 알아서 해라. 하지만 비겁한 모습은 보이지 마라.”

이 말은 훗날 공형진의 배우 인생을 지탱하는 좌표가 됐다.

그러나 현실은 쉽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까지 했지만 생활은 빠듯했고, 배우로서 두각을 드러내기 전까지는 경제적 어려움이 컸다.

부모의 도움을 청할 수도 있었지만 아버지와 한 약속 때문에 손을 벌릴 수 없었다.

그는 스스로 버티며 극단 유 단원이 되어 연극 무대에 올랐다.

하지만 오랜 시간 성과가 없자 부모와의 관계는 단절되다시피 했다. 무려 10년 동안 아버지와는 대화를 나누기조차 어려웠다.

이 긴 고립의 시간은 그에게도 무겁게 다가왔다. 배우라는 꿈을 붙잡고 싶었지만, 그 선택이 과연 옳은지 매 순간 흔들렸다.

전환점은 영화 파이란이었다. 최민식과의 인연으로 오디션 기회를 얻었고, 두 번의 도전 끝에 경수 역을 맡게 됐다.

영화가 개봉한 뒤, 그동안 차갑게 거리를 두던 아버지가 처음으로 아들을 배우로 인정해줬다.

작품을 본 날, 아버지는 공형진을 안아주며 오랫동안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그날 흘린 눈물이 10년의 단절을 녹여낸 순간이었다.

이후 그는 드라마 추노, 도망자 Plan.B 등에서 개성 있는 연기를 선보이며 대중에게 배우로 각인됐다.

예능 택시를 통해서는 친근한 진행자로서 또 다른 얼굴을 보여주었고, 홍상수 감독의 작품에도 출연하며 연기 스펙트럼을 넓혀갔다.

하지만 순탄한 길만 있던 것은 아니다. 긴 공백기가 이어지면서 심지어 ‘사망설’까지 돌았다.

실제로 그는 중국에서 영화 제작과 건강식품 사업에 도전했지만 코로나19로 큰 타격을 입었다.

성과 없이 시간이 흘러가자 사람들 앞에 나서기가 망설여졌다고 고백했다.

그럼에도 그는 다시 무대와 카메라 앞에 서려 하고 있다.

뮤지컬 클레오파트라에서 시저 역으로 데뷔하며 새로운 장르에 도전한 것도 그 연장선이다.

노래와 무대가 낯설었지만, “늦기 전에 하길 잘했다”는 그의 말 속에서 여전히 살아 있는 열정을 엿볼 수 있다.

공형진은 “평생 배우로 살겠다”고 말한다.

부모가 바라던 엘리트 코스와는 달리, 스스로의 길을 고집한 선택은 수많은 단절과 고난을 불러왔지만 결국 그를 ‘배우 공형진’으로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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