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걸린 시어머니에게 ‘존속상해’로 고소 당해서 이혼한 비운의 여배우


사람 인생은 뜻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가 많다. 특히 결혼은 혼자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한 사람과의 만남이 아니라, 두 집안과의 결합이기 때문이다.

탤런트 김정하는 1970년대 전성기를 누리던 배우였다.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에서 얼굴을 알렸고, ‘노래하는 탤런트’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그런 그녀가 당시 야구 팬들에게는 절대적인 인기를 누리던 OB베어스의 스타 김우열과 결혼하면서, 대중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

지금이야 연예인과 스포츠 스타의 결혼이 흔하지만, 당시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1979년, 두 사람은 세간의 큰 축복 속에 부부의 연을 맺었다. 하지만 결혼 생활은 달콤한 신혼으로만 이어지지 않았다.

남편의 경제 사정이 여의치 않아 김정하는 임신한 몸으로도 옷장사, 팝콘 장사 등을 하며 생활을 꾸려갔다.

배우로서의 커리어를 잠시 내려놓고 시댁을 돕는 길을 택했지만, 그 속에서 갈등은 서서히 깊어졌다.

결정적인 문제는 시어머니와의 관계였다.

어느 날 친척들이 모여 식사하는 자리에서 시어머니가 갑자기 “며느리가 나를 때렸다”고 울부짖은 것이다.

맞은 건 오히려 김정하였지만, 시어머니의 말은 곧바로 ‘존속상해’라는 무거운 죄목으로 이어졌다.

‘존속상해’는 부모나 배우자의 직계 존속을 다치게 했을 때 적용되는 죄다.

당시 언론에도 대문짝만하게 보도되면서, 김정하는 하루아침에 범죄자가 되어버렸다.

경찰서에 가니 시어머니의 진술서에는 ‘술을 잘 마신다’, ‘춤바람이 났다’, ‘생활비를 안 준다’는 등 좋지 않은 말들이 가득 적혀 있었다. 평생을 지우고 싶었던 굴욕이었다.

1년간의 법정 싸움 끝에 의사가 시어머니가 우울증 약을 복용해왔다는 사실을 증언하면서, 김정하는 간신히 형을 피했다.

하지만 이미 그녀의 이름에는 ‘존속상해’라는 낙인이 찍혔다. 결국 집행유예 6개월 판결을 받았고, 기자들을 피해 다니다 노이로제에 걸리기도 했다.

가장 큰 시련은 아들을 지키는 일이었다. 시댁에서는 친권 양도를 요구하며 아들을 데려가려 했고, 김정하는 이를 끝까지 막아냈다.

“아들만큼은 빼앗길 수 없었다”는 말처럼, 삶의 모든 무게를 짊어지고서라도 아들을 지켜낸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싱글맘의 삶은 녹록지 않았다. 방송 활동은 사실상 끊겼고, 생활고에 시달리며 극단적인 선택을 고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살아야 했다. 아들을 위해서. 결국 밤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르며 생계를 이어갔고, 여기서 ‘노래하는 탤런트’라는 별명이 붙었다.

김정하&아들

김정하는 훗날 이렇게 말했다.

“결혼은 남편만 보고 하는 게 아니라, 그 집안 전체를 보고 해야 하는 거다. 나는 남편과 결혼한 게 아니라 시부모님과 결혼한 것 같았다.”

사랑으로 시작했지만, 결국 눈물과 상처로 끝난 결혼.

하지만 그녀는 그 모든 시간을 버텨내고, 다시 연기자로 돌아왔다.

드라마 〈막돼먹은 영애씨〉 속 ‘영애 엄마’로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배우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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