탤런트 오미희의 인생을 들여다보면, 그야말로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하다.
두 번의 결혼과 두 번의 이혼, 생후 백일 된 딸과의 이별, 전남편과 이어진 5년의 법정 싸움, 폭력과 살인미수 의혹까지.
거기에 암투병과 학력 논란, 달팽이관 이상으로 인한 건강 악화까지 겹치며, 한 사람이 겪을 수 있는 굴곡을 모조리 안고 살아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83년, 집안의 중매로 의사와 첫 번째 결혼을 올린 오미희.
그러나 결혼 생활은 오래가지 않았다. 성격 차이로 결국 백일 된 딸을 두고 이혼하게 된 것.
아기를 품에 안은 지 불과 석 달 만에 겪은 이별은, 평생 마음에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았다.
그 후 오랫동안 혼자 지내던 오미희에게 또 한 번의 사랑이 찾아왔다.
1997년, 지인의 소개로 만난 피부과 전문의와 단 3개월 만에 결혼을 결심했다.
불꽃 같은 사랑이었지만, 현실은 차가웠다. 불과 1년 2개월 만에 부부는 갈라섰고, 그 과정은 평범한 이혼이 아니었다.
1998년, 오미희는 남편의 상습적인 폭행을 이유로 고소했다. 실제로 등뼈가 부러질 만큼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고 주장하며 형사 고발까지 이어졌다.
법정에서 재판부는 “두 사람 모두 책임이 있으나, 주된 책임은 남편에게 있다”며 위자료 5천만 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그러자 남편은 격렬하게 반발했다.
오히려 오미희가 자신을 폭행했으며, 심지어 차로 들이받으려 했다며 살인미수 혐의로 맞고소를 제기한 것이다.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은 겨우 1년 남짓이었지만, 이혼 소송은 무려 5년 동안 이어졌다.
서로를 향한 고소와 맞고소, 폭행과 위증, 명예훼손이 얽히며 법정은 진흙탕 싸움터가 되었다.
최종 판결에서 오미희는 살인미수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받았으나, 일부 폭행 혐의가 인정돼 벌금 100만 원의 선고유예 판결을 받았다.
사실상 면소에 가까운 판결이었지만, 이미 그녀의 명예와 이미지에는 큰 상처가 남았다.
남편 역시 교수직을 잃고 의사로서의 평판이 무너져 내렸다. 결국 이 싸움에서 승자는 없었다.
짧은 결혼과 긴 이혼 소송은 결국 ‘애정이 애증을 넘어 증오로 바뀐 이야기’였다.
드라마에서조차 보기 힘든 극단적인 파국. 처음 서로를 열렬히 사랑했던 두 사람은, 결국 법정에서 원수처럼 마주하게 되었다.
오미희는 훗날 이렇게 말했다.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 찍으면 남이 된다고 하지만, 사실은 남보다 더한 원수가 되더라고요.”
그렇게 모든 걸 잃은 듯했지만, 오미희는 주저앉지 않았다. 암투병까지 겪으며 몸과 마음이 무너졌을 때도, 라디오 마이크를 놓지 않았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성인이 된 딸과 매주 토요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새로운 행복을 만들기 시작했다.
한때는 “왜 내 인생은 이 모양일까”라는 불평도 했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행복은 불행한 날의, 불행은 행복한 날의 조각일 뿐이에요. 상처는 흉터로 남지만, 더 이상 아프지 않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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