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자는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환경 속에 자랐다.
아버지 김용택 박사는 해방 직후 미군정 재무부 장관을 지냈고, 대한민국 2호 경제학 박사라는 화려한 이력의 소유자였다. 그 덕분일까.
그녀의 집은 무려 마당만 900평, 거실만 200평에 달했다.
동네 아이들이 집 마당을 공원으로 착각하고 뛰어놀 정도였으니, 지금 들어도 상상하기 힘든 유복한 환경이었다.
엘리트 코스를 밟던 김혜자는 경기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화여대 생활미술학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그녀의 꿈은 단순히 ‘좋은 집안 딸’에 머무르지 않았다.
KBS 1기 공채 탤런트에 선발되며 연기자의 길로 들어서기 시작한 것이다.
그녀가 가진 눈빛과 기품은 이미 무대 위에서 빛날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청춘의 절정에서 김혜자는 커다란 전환점을 맞는다. 11살 연상의 남편을 만나 21살에 결혼을 선택한 것.
뜨겁게 사랑했지만, 문제는 학교였다. 당시 이화여대에는 ‘금혼 규정’이 있었다.
학생 신분으로는 결혼이 불가했던 것.
결국 김혜자는 눈물을 머금고 학교를 떠나야 했다.
“꽃길만 걸을 줄 알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는 그녀의 고백은 젊은 날의 아쉬움과 사랑의 무게를 동시에 담고 있다.
유복한 집에서 자라 결혼 전까지 집안일은 전혀 해본 적이 없던 김혜자. 결혼 후에도 살림에는 서툴렀다.
하지만 섬유 회사를 운영하던 남편이 “연기에만 집중하라”며 전폭적으로 지원해 주었고, 그 덕분에 그녀는 배우로서 꽃을 피울 수 있었다.
결국 ‘국민 엄마’라는 타이틀을 거머쥐며 한국 드라마사에 한 획을 그었다.
올해로 여든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김혜자는 무대와 카메라 앞에 서고 있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배역을 맡으면 수탉이 울고 쓰러지듯, 모든 힘을 다 쏟아낸다.”
장관의 딸에서 국민 엄마로, 김혜자의 인생은 화려한 배경보다도 열정과 진심이 한 사람을 어디까지 끌어올릴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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