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방송 촬영차 들렀던 경기 동두천의 애신아동복지센터(애신원). 박수홍은 그곳에서 만난 아이들의 얼굴을 잊을 수 없었다.
방송은 끝났지만, 그는 개인적으로 다시 애신원을 찾았고, 그게 인연의 시작이었다.
아이들과 피자를 먹고, 사인을 해주고, 놀아주던 그 시간은 단순한 봉사가 아니었다. 박수홍은 매년 2~3번씩 애신원을 찾았고, 20년 넘게 꾸준히 후원해왔다.
과거 한 스키캠프 진행 제안을 받았을 때, 출연료 대신 보육원 아이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덕분에 아이들은 1박 2일 동안 특별한 겨울 추억을 만들 수 있었다.
겨울에는 석면 건물 전체를 철거하는 공사비도 부담했고, 병원비, 공연 관람, 문화체험 등 아이들의 추억을 만드는 데 정성을 아끼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당시 아이들은 이제 성인이 됐다.
박수홍이 2022년 <신상출시 편스토랑>에 아이들을 초대했을 때, 그들은 말했다.
“아저씨가 아니었으면, 우리에게 그런 기억은 없었어요.”
“수홍 아저씨는 키다리 아저씨였고, 지금도 생명의 은인입니다.”
아이들은 자신이 보육원 출신임을 밝혀가며 박수홍을 응원했고, “왜 이런 착한 사람을 사람들이 오해하는지 모르겠다”고 목소리를 냈다.
그 모습에 박수홍은 끝내 눈물을 보였고, 아이들도 함께 울었다.
“내가 너희들 만나면 웃게 해줘야 하는데… 정말 고맙다. 절대 안 잊을게.”
박수홍은 친형에게 수십억 원의 재산을 횡령당했다.
사망보험까지 들어놓은 사실이 알려졌을 땐 많은 이들이 경악했다. 그런데도 그는 여전히 애신원을 떠나지 않았다.
얼마 전에도 그는 1000만 원을 기부했고, 갈비탕 500인분, 주방기기 세트 등을 전달하며 아이들을 챙겼다.
보육원 원장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받은 게 너무 많아 이젠 그만 도와줘도 된다고 했는데도, 본인이 직접 1000만 원을 더 보냈다”며 “이런 착한 사람이 왜 아픔을 겪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는 애신원에서 봉사를 하며 오히려 자신이 위로를 받았다고 말한다.
“내가 도운 게 아니에요. 내가 아이들에게 더 큰 힘을 얻었어요.”
그리고 한 가지 약속을 덧붙였다.
“아이들을 지키는 건 제 의무예요. 작더라도 계속 돕고 싶어요.”
결혼식 축의금을 보육원에 기부했고, 유기견 보호소에서도 봉사를 이어가고 있는 박수홍.
그가 걷고 있는 길은 흔치 않지만, 그래서 더 선명하게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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