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누구나 인정하는 배우 이병헌.
하지만 그가 처음 연기자의 길을 걸었을 때는 누구보다도 냉혹한 현실을 마주해야 했다.
1991년, KBS 14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이병헌은 드라마 <아스팔트 내 고향>에서 처음으로 비중 있는 배역을 맡았다.
문제는 연출을 맡은 정을영 감독이었다.
배우 정경호의 아버지로도 알려진 정을영 PD는 신인 배우에게 엄격하기로 소문난 인물이었다.
이병헌에게는 첫 촬영 날부터 시련이 시작됐다.
스태프와 배우들 앞에서 “이 작품은 나의 데뷔작이자 은퇴작이다”라는 말을 세 번이나 복창시켰고, “네가 사온 음료수를 왜 내가 먹냐”며 냉대하기도 했다.
이병헌은 매일 아침 눈을 뜨며 “오늘은 욕을 덜 먹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로 정신적 압박을 겪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이병헌은 포기하지 않았다.
감독의 독설을 단순한 모욕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자신이 부족해서 생긴 결과라고 여겼다. 그리고 묵묵히 연습했다.
그는 나중에서야 정을영 감독에게 “왜 그렇게 하셨냐”고 물었고, 돌아온 대답은 의외였다.
“넌 공부도 잘하고 똑똑해서, 연기가 아닌 다른 길을 가길 바랐다.”
감독은 이병헌의 가능성을 봤지만, 연기자로서의 길은 힘들 거라 생각해 일부러 차갑게 대했다고 한다.
지금도 이병헌은 이 시기를 “자신을 성장시킨 고통스러운 과정”이라 말한다.
연기를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조차 많았지만, 그 시간을 지나며 그는 ‘버티는 힘’을 얻게 되었다.
이듬해 이병헌은 <내일은 사랑>에 출연하며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다.
박소현과 함께 청춘 커플로 주목받았고, <사랑의 향기>, <해피 투게더>, <아름다운 날들>, <올인> 등 굵직한 드라마로 연기력을 입증했다.
특히 송혜교와 함께한 <올인>은 최고 시청률 40%를 넘기며 그를 스타덤에 올렸다.
영화에서는 <공동경비구역 JSA>로 본격적인 주목을 받았고, 이후 <달콤한 인생>, <내부자들>, <광해, 왕이 된 남자> 등으로 굵직한 연기를 보여주며 충무로의 중심에 섰다.
특히 <광해>로는 국내 유수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휩쓸며 연기 인생의 정점을 찍었다.
2009년에는 <지.아이.조> 시리즈로 할리우드에 진출했고, 2021년 <오징어 게임> 시즌1 후반부에 등장하며 전 세계 시청자에게 또 한 번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병헌은 지금도 연기에 관해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고 말한다.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다양한 캐릭터를 경험하며, 연기를 ‘몸으로 이해해가는 과정’이라 정의한다.
신인 시절, “이 작품이 네 은퇴작이다”라는 말로 시작된 그의 여정은 지금,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가 주목하는 배우라는 자리로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겪은 고통과 고난은, 이병헌이라는 배우가 가진 깊이의 뿌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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