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방송국에서 만난 두 사람은 처음부터 이상하게 잘 맞았다.
녹화가 끝난 뒤, 정재형이 타고 있던 밴에 엄정화가 우연히 함께 타게 됐다.
그렇게 바다로 향했고, 회를 먹고 술잔을 기울였다.
처음 만난 날부터 어색함이 없었다. 이후로는 늘 함께였다.
엄정화는 그때부터 정재형을 오빠처럼 따랐고, 정재형은 엄정화를 가장 편한 사람으로 여겼다.
시간이 지나면서 친구라는 말로는 부족한 사이가 됐다.
28년. 사람 하나에 질려도 수없이 질릴 시간이다.
하지만 이들은 그 긴 세월을 함께 나이 들며, 더 단단한 우정으로 채워왔다.
정재형이 프랑스 유학 시절 외로움을 겪을 땐 엄정화가 찾아가 함께 시간을 보냈고, 엄정화가 암 투병을 하던 시기에는 정재형이 병원에 함께 다녔다.
수술 이후 성대가 마비되며 목소리를 잃을 뻔한 순간, 정재형은 사람들 앞에서 눈물을 보였다. 말보다 마음이 먼저 닿았던 순간이다.
정재형은 엄정화를 “묘비에 이름을 새길 친구”라 표현했다.
엄정화는 “내 인생 엔딩 크레딧에 정재형이 올라간다”고 말했다.
단순한 ‘절친’이라는 단어로는 설명되지 않는 관계다.
둘은 서로를 너무 잘 안다.
정재형은 일을 벌리는 엄정화에게 “이건 하지 마”라고 조언하고, 엄정화는 뭐든 망설이는 정재형에게 “일단 해봐”라고 등을 떠민다.
방향은 다르지만, 믿음은 같다. 잘 되길 바라는 마음, 그 마음에서 나오는 말들이라서 서로 쉽게 받아들인다.
두 사람의 우정은 삶의 방식까지 닮았다. 엄정화는 어느 날 정재형의 제안으로 서핑을 시작했다. 처음엔 망설였다.
“우리 나이에 가능할까?”라는 걱정이 먼저 들었다.
하지만 해보니 알게 됐다. 늦은 나이란 건 없고, 무언가를 시작하는 데 필요한 건 결국 용기 하나뿐이라는 걸.
엄정화는 파도 위에서 웃는다. 파도가 거칠든 잔잔하든, 넘어지고 일어나기를 반복하면서 그 안에서 다시 삶의 박동을 느낀다.
그녀는 “서핑을 할 땐 가슴이 뛴다. 좋은 친구와 함께라서 더 행복하다”고 말했다.
오랜 세월을 함께 보낸 친구와 지금 이 순간을 공유한다는 것. 아마 그게 이들에게 가장 소중한 일인지도 모른다.
엄정화는 “인생의 절체절명의 순간에 네가 있었고, 너한텐 내가 있었다”고 말했다.
정재형은 “우린 서로 마음속에 있는 걸 숨기지 않고 다 말한다”고 했다.
서로를 지켜주는 방식은 다르지만, 마음의 결은 같다.
저 우정 하나면, 세상에 두려울 게 없겠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모든 사진 출처; 이미지 내 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