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언니의 조카 2명을 입양했다고 가족사 고백한 유명가수


수많은 명곡을 남긴 음악가, 송창식.

그의 이름을 들으면 <왜 불러>, <고래사냥>,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시대를 대표하는 노래들이 먼저 떠오르지만, 그보다 더 깊이 들여다보면 한 사람의 삶이 오롯이 녹아든, 결코 평탄하지만은 않았던 이야기들이 있다.

송창식은 전쟁통에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마저 재혼하면서 어린 나이에 여동생과 함께 친척집을 전전하며 자랐다.

끼니를 걱정해야 했고, 고등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했다.

서울역 같은 곳에서 노숙하며 지냈던 2년의 시간.

“겨울엔 숨 쉬는 것도 아까울 만큼 추웠다”며 그 시절을 떠올렸다. 그러다 우연히 들어간 ‘쎄시봉’에서 “밥을 준다”는 말에 이끌려 노래를 시작하게 됐다.

그게 송창식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송창식의 아내는 서울예고 동창 한성숙 씨다. 음악과와 미술과로 서로 다른 길을 갔던 두 사람은 졸업 이후 연락이 끊겼다가, 우연히 미국 공연 중 아내의 언니를 통해 다시 만나게 된다.

스튜어디스로 일하다 골동품 사업까지 겸했던, 재능과 배움을 겸비한 엘리트였다.

처음엔 어울리지 않는다고 마음을 접으려 했지만, 결국 송창식이 파트너로 참석한 미8군 파티를 계기로 연인으로 발전했고, 보름 만에 그녀의 부산 집으로 인사를 가 결혼을 약속했다.

현재 송창식 부부에겐 세 자녀가 있다.

장남 송결은 친자녀이고, 두 딸은 입양한 아이들이다.

그 이야기는 처형과 얽혀 있다.

첫째 딸은, 난임이었던 처형이 입양을 추진하다 법 개정으로 무산되면서 송창식 부부가 입양하게 된 아이였다.

둘째 딸은, 처형이 미국에서 불법 인공수정으로 어렵게 출산한 아이였지만, 예술 활동으로 인해 직접 양육이 어려운 상황.

부부는 미국에 갔다가 이 아이를 품에 안게 됐고, 그렇게 또 하나의 인연을 품게 됐다.

한때는 노숙자였고,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음악을 놓지 않았던 송창식.

자신을 “답답하고 미련한 사람”이라 표현하지만, 그 진심은 고스란히 노래로 이어져 지금까지도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고 있다.

예고에 수석으로 입학했지만, 개인 교습을 받을 수 없어 클래식을 접었던 사연.

기자들이 불러도 자리를 피해 다녔던 성격. 자신의 이름으로 지어 둔 예명을 아들의 이름으로 물려준 아버지로서의 모습.

스스로를 “가수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인간”으로 설명하며, 지금도 매주 미사리 카페 무대에 서서 노래를 부른다.

새벽에 자고 오후에 일어나는 생활. 하루의 대부분은 음악과 책, 운동, 연습으로 채워진다.

모든 사진 출처: 이미지 내 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