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범은 1980년대부터 90년대 초반까지 대한민국 농구계를 대표하는 센터였다.
2미터가 넘는 큰 키, 탁월한 실력, 압도적인 존재감으로 ‘코트 위의 거인’이라 불렸다.
하지만 은퇴 이후의 삶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프로농구 출범 직전, 몸 상태가 악화돼 한 달을 앞두고 은퇴하게 된 한기범은 체육 사업과 건강식품 판매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당시 홈쇼핑을 통해 키 크는 건강식품을 판매하며 한 회 방송만으로 억대 매출을 올리기도 했다.
일주일에 두 번씩, 6개월간 방송을 이어갔지만 손에 쥐는 수익은 생각보다 적었다. 계약 조건이 불리했기 때문이다.
이후 무리하게 확장한 다른 사업들까지 잇달아 실패하며, 모든 재산을 잃게 된다.
일주일에 두 번씩, 6개월간 방송을 이어갔지만 손에 쥐는 수익은 생각보다 적었다. 계약 조건이 불리했기 때문이다.
이후 무리하게 확장한 다른 사업들까지 잇달아 실패하며, 모든 재산을 잃게 된다.
한기범의 시련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두 아들이 경계성 자폐 스펙트럼 진단을 받은 것이다.
아내는 “아이들이 집안 환경이 무너진 이후 틱장애를 겪기 시작했다. 막 밀어붙이면 자폐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이 무서웠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부부는 끝까지 아이들의 곁을 지켰고, 성인이 된 후 정밀 검진에서 큰 이상은 없다는 판정을 받았다.
한기범에게는 유전성 희귀질환인 ‘마르판 증후군’이 있다. 비정상적으로 큰 키와 긴 팔다리, 그리고 심혈관계에 치명적인 위험이 동반되는 병이다.
실제로 아버지와 남동생이 이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한기범도 2000년과 2008년 두 차례 심장 수술을 받았다.
그 시기 둘째 아이를 임신 중이던 아내에게 “아이를 포기하자”는 말까지 꺼냈지만, 오히려 아내는 “아빠가 아닌 엄마를 닮을 수도 있다”며 용기를 줬다.
아이들도 무사히 자라주었고, 가족은 조금씩 일상을 회복해갔다.
한국심장재단의 도움으로 수술을 받을 수 있었던 그는 다시 농구와 봉사활동, 방송을 통해 사람들과 만나는 삶을 살고 있다.
과거보다 집은 작아졌지만, 지금은 오히려 마음이 더 편하다고 말하는 아내.
그 말처럼, 한기범의 인생은 수치로 남는 기록보다, 버티고 견디며 나아간 시간들이 더 크게 느껴진다.
모든 사진 출처: 이미지 내 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