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삼성가의 장녀와 평범한 집안 출신의 청년이 결혼했다.
재벌가와 일반인의 만남, 남성판 신데렐라 스토리라 불릴 만큼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이 결혼은 세기의 로맨스로 불렸다.
그리고 21년 5개월 뒤, 법원이 이들의 이혼을 확정지으며 또 한 번 세간의 시선을 모았다.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임우재 전 삼성전기 고문의 만남은 1995년 삼성복지재단 봉사활동에서 비롯됐다.
연애가 시작된 건 이듬해 복합문화단지 기획단에서 다시 만나면서부터였다.
하지만 집안 차이 탓에 임우재는 결혼을 부담스러워했고, 처음엔 고사했다.
이부진은 가족을 일일이 설득하며 임우재의 진심을 설명했고, 결국 결혼은 성사됐다.
결정적인 건 이건희 회장의 한마디였다.
딸보다 여동생이 먼저 결혼하는 걸 원치 않았던 그는 임우재와의 결혼을 직접 지시했다.
삼성에서 이건희의 말은 곧 ‘헌법’처럼 여겨졌다. 그렇게 1999년 8월, 두 사람은 많은 이들의 축복 속에 부부가 됐다.
일각에선 결혼식 당일 이건희 회장의 표정이 일그러져있었다는 이야기도 돌았지만, 해당 결혼식은 이건희 회장이 주도한 사항인만큼 루머는 사실이 아니었다.
결혼 후 임우재는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그러나 익숙지 않은 환경과 압박감 속에서 힘겨운 시간을 보냈고, 돌아와서는 삼성전기에서 초고속 승진을 이어갔다.
6년 만에 부사장까지 오른 이력은 당시로서도 이례적이었다. 이런 배경 때문에 삼성가의 후광을 입었다는 시선도 있었지만, 그 이면엔 이부진의 내조와 영향력도 있었다.
가족 모임에서 남편을 무시하지 말라고 일갈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하지만 화려해 보였던 결혼생활은 점차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2014년, 이부진이 먼저 이혼 조정을 신청하며 파경이 공식화됐다.
임우재는 처음엔 이혼을 거부했다. “가정을 지키고 싶다”는 입장을 내세웠고, 재산분할도 요구하지 않았다.
하지만 재판이 길어지며 양측의 입장은 더욱 날카로워졌다.
이부진 측은 음주와 폭언, 가정생활 소홀을 이유로 들었고, 임우재는 이혼 사유에 반박하며 되레 1조 2천억 원 규모의 재산분할을 요구하기도 했다.
결국 대법원은 이부진의 손을 들어줬다.
친권과 양육권은 이부진에게, 재산분할금 141억 원은 임우재에게 지급하도록 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법적으로 남이 됐다.
처음부터 평탄한 길은 아니었다. 결혼 당시부터 양가의 반대가 있었고, 서로를 향한 감정과 애정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간극이 있었다.
자녀 문제를 둘러싼 갈등과 면접교섭권 축소, 언론을 통해 드러난 고통스러운 진술들은 이들의 이혼이 단순한 결별이 아님을 보여줬다.
세기의 결혼으로 주목받은 두 사람은 결국 세기의 이혼으로 마무리됐다.
임우재는 현재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고 전했다.
과거를 돌아보며 언젠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할 날도 있을 것이라며, 여전히 조용히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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