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리포트=이동건 기자] SBS의 간판 예능 ‘골 때리는 그녀들’. 여성 연예인들의 축구 리그라는 소재와 신선한 포맷으로 승승장구했지만, 큰 변곡점도 있었다. 2021년 편집 순서를 뒤바꾼 조작 논란으로 질타받은 뒤 오랜 시청률 하락세를 겪은 것.
시청률 부진을 맛본 ‘골때녀’는 새로운 감독들의 영입을 통해 색다른 재미를 꾀했고, 매 시즌 떠오르는 스타플레이어들의 활약은 이에 일조했다. 제작진의 기획과 다양한 시도 덕분에 여성 축구의 매력에 빠진 시청자들, 그렇게 안방 1열에 다시 자리하게 됐다.
하지만 슬프게도 역사는 반복되고 말았다. 지난달 27일 방송된 ‘골때녀’ FC구척장신과 FC원더우먼의 결승전 경기 후 심판의 편파 판정 및 제작진의 조작 논란이 불거진 것.
이날 FC구척장신은 FC원더우먼의 에이스인 마시마 유를 견제하기 위해 거친 플레이를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심판진은 움직이지 않았고, 조재진 감독의 항의마저 묵살됐다.
제작진이 같은 달 30일 해당 경기 기록지를 공개했으나 논란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마시마 유가 후반 12분 카드를 받은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 마시마 유가 경고를 받은 장면은 방송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분노한 시청자들. “해당 반칙은 편집돼 공개되지 않았고, 이러한 누락은 경기 결과에 대한 신뢰와 공정성을 중대하게 훼손한다”는 성명문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시청자들은 매주 홈페이지에 업데이트돼온 경기 기록지가 3일 늦게 공개된 점도 지적했다. 각 팀 선수와 심판진의 입장 장면이 편집되고 주심·부심·감독관의 성명이 표기되지 않은 점도 문제시됐다.
이들은 성명문을 통해 후반 12분 전후 경고 발생 전후 포함 풀 시퀀스를 편집 없이 공개할 것, 해당 경고 및 당시 누적 파울·카드 현황 명시, 적용 규정, 심판·기록원 보고 요지 공표를 요구했다.
▲ 제작진-시청자 ‘동상이몽’, 프로그램 정체성 이해하고 스포츠맨십 집중해야
‘골때녀’는 예능의 틀 안에 있지만, 본질은 스포츠다. 출연자들은 한 번의 경기를 위해 몇 주, 몇 달간 훈련을 하고 경기 후에는 희로애락으로 뒤범벅된 눈물을 쏟는다. 시청자들은 함께 감탄하고 감동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리얼’, ‘진정성’, ‘공정성’이라는 가치는 생명줄이 된다.
방송사의 편집권은 존중돼야 하지만, 편집권이 오인과 불신으로 이어질 때 문제는 달라진다. 스포츠는 그 자체로 충분히 스릴 넘친다. 억지로 장면장면을 붙이거나 떼어냄으로써 매끄러워지는 도예품이 아니라는 말이다.
물론 짧은 경기를 한 회 분량으로 구성해야 하는 제작진의 고충도 이해된다. 하지만 공정성과 투명성이야말로 양보할 수 없는 가치고, 선결 과제다. 이미 한 차례 조작 논란을 겪은 프로그램이라면 더욱 그렇다. ‘골때녀’는 그 점을 결코 잊어선 안 됐다.
우승까지 5년을 버틴 이현이의 눈물은 값졌다. 하지만 ‘골때녀’는 그 진심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다. 땀과 희생을 정당하게 기록하지 못한 스포츠 예능은 결국 예능도, 스포츠도 아닌 가짜 드라마가 된다.
각자의 자리에서 스포츠 정신을 실현하려 했던, 모든 이들의 땀을 ‘골때녀’는 저버렸다. 빛바랬다. 아프다.
이동건 기자 [email protected] / 사진=SBS ‘골 때리는 그녀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