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가요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이름, 이선희.
1984년 강변가요제에서 ‘J에게’를 부르며 단숨에 스타 반열에 오른 그는, 4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국민가수’라는 호칭을 지켜왔다.
맑고 힘 있는 목소리, 그리고 시대를 관통하는 노래로 사랑받아왔지만, 그의 개인사는 결코 평탄치 않았다.
1992년, 이선희는 당시 매니저이자 음반 제작자였던 윤희중과 결혼했다.
오랫동안 함께 음악을 준비하며 쌓은 신뢰가 부부의 연으로 이어졌고, 이듬해 딸 양원이 태어나면서 가정은 더욱 단단해지는 듯 보였다.
하지만 남편의 잦은 사업 실패는 부부의 생활을 흔들었다.
결국 1998년 IMF 외환위기를 지나며 이들은 6년 만에 이혼에 이르렀다. 더 큰 비극은 그 뒤에 찾아왔다.
윤희중이 재기의 꿈을 접고 1999년 세상을 떠난 것이다. 이선희는 무대에 서던 중 비보를 전해 듣고 실신했고, 그 충격은 오래도록 그의 마음에 남았다.
그럼에도 그는 무대에 올라 전남편이 작곡했던 ‘나의 거리’를 불렀다.
“노래하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던 그의 고백은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렸다.
시간은 흘러 2006년, 이선희는 9살 연상의 건축가 정모 씨와 재혼했다.
이번 결혼은 가족과 친지만 참석한 미국 현지의 작은 비밀 예식으로 치러졌다.
그는 딸의 유학을 돌보기 위해 한동안 미국에 머물며 가정에 집중했고, 2008년 귀국 후 다시 가수로서 무대에 섰다.
그러나 두 번째 결혼 역시 오래가지 못했다.
남편의 장기 해외 체류로 인해 부부는 사실상 기러기 생활을 이어갔고, 별거가 길어지면서 관계는 점점 멀어졌다.
결국 2020년, 두 사람은 성격 차이를 이유로 협의 이혼했다. 재혼 14년 만의 결별이었다.
결혼과 이혼의 굴곡진 사연에도 불구하고, 이선희는 언제나 ‘가수 이선희’로 돌아왔다.
16집 정규 앨범을 발매하며 여전히 음악에 대한 열정을 보여주었고, 2018년에는 평양 공연 무대에 올라 노래로 남북을 잇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또 다른 시련이 닥쳤다.
2023년, 그녀는 횡령 의혹으로 경찰 조사를 받으며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이선희는 2024년 데뷔 40주년을 맞아 “작은 것 하나에도 소홀함 없이 살았어야 했는데, 부족했다”며 팬들에게 직접 사과문을 발표했다.
여전히 자신을 “노래하는 사람”으로 남기겠다는 다짐과 함께였다.
두 번의 결혼과 두 번의 이혼, 그리고 그 사이에서 겪은 아픔은 큰 상처로 남았지만, 그녀는 끝내 노래로 그것을 이겨냈다.
“무대에서 쓰러지는 순간까지 노래하고 싶다.”
그녀의 이 말처럼, 인생의 굴곡 속에서도 노래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도 여전히, 이선희는 많은 이들에게 희망과 위로의 목소리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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