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동창으로 한때 국민가수 반열까지 올랐지만.. 지금은 서로 손절해버린 비운의 듀오


(왼) 안지영 / (우) 우지윤

경북 영주의 여고에서 만난 안지영과 우지윤. 이름의 자음이 같다는 이유로 가까워졌고, 같은 조가 되거나 짝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정이 쌓였다.

그러다 우지윤이 제안했다.

“학교 가요제에 나가보자, 너는 그냥 오기만 하면 돼.”

그 말 한마디에 안지영은 마음을 열었고, “난 가수가 꿈인데, 너도 그래?”라고 되물었다. 서로의 비밀 같던 꿈은 그렇게 하나의 팀이란 이름 아래 시작됐다.

학창시절엔 버스킹을 하며 음악의 기초를 쌓았고, 지역 축제며 학원 공연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오디션 프로그램은 몇 번이나 문턱에서 좌절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한 번만 더 하고, 아니면 각자의 길을 가자.”

그렇게 도전한 ‘슈퍼스타K6’에서 드디어 가능성을 인정받으며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다.

2016년, 볼빨간사춘기는 데뷔곡 ‘우주를 줄게’로 가요계에 등장했다.

초반엔 주목받지 못했지만, SNS를 통해 입소문이 퍼졌고 이내 차트 역주행이라는 말이 어울릴 만큼 빠르게 주목을 받았다.

이후 ‘좋다고 말해’, ‘여행’, ‘썸 탈꺼야’ 등 수많은 곡들이 연이어 히트했고, ‘인디 돌풍’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무대 위에서는 언제나 함께였고, 노래하는 모습도, 웃음 짓는 얼굴도 따뜻했다.

지방에서 상경해 자신들만의 음악을 만들어낸 두 사람은, 많은 이들에게 ‘청춘’ 그 자체였다.

수상, 콘서트, 해외 진출까지 빠르게 성장했고, 한때 국내 음원 시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팀 중 하나였다.

하지만 한 발짝 뒤에서 바라보면, 그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두 사람에게 동일하게 닿지는 않았다.

안지영은 팀의 보컬이자 곡 작업의 중심이었다.

방송이나 인터뷰에서도 주로 앞에 나섰고, 자연스럽게 ‘볼사 = 안지영’이라는 이미지가 굳어졌다.

우지윤은 무대에 함께 섰지만 상대적으로 조용한 그림자에 머물렀다.

2020년 4월, 우지윤이 팀 탈퇴를 발표하면서 불화설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처음엔 “진로 고민 때문”이라는 설명이었지만, 이후 SNS를 통해 양측의 속마음이 드러났다. 그리고 그것은 생각보다 더 깊은 감정의 엇갈림이었다.

안지영은 우지윤이 자신을 겨냥한 듯한 노래 가사에 상처를 받았다고 고백했고, “꿈에 나올 정도로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우지윤

반면 우지윤은 “이미 팀 활동 종료를 염두에 두고 있었고, 진정성 없는 앨범 활동을 피하고 싶었다”며 빠른 탈퇴를 결정한 배경을 설명했다.

언팔로우, 해명, 반박, 침묵. 감정의 골은 쉽게 좁혀지지 않았고, 결국 두 사람은 각자의 자리로 흩어졌다.

2024년 새 앨범 ‘서울’을 발표한 안지영.

학창시절, 그리고 음악을 처음 시작하던 순간의 감정을 담은 앨범이지만, 그 시절을 함께한 우지윤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앨범 제목도, 가사도, 쇼케이스도 마찬가지였다.

사전 질문에서 우지윤 관련 내용은 소속사 측에서 누락시켰고, 그녀의 존재는 앨범 전체에서 사라졌다. 그저 ‘없는 사람’이 된 것이었다.

물론, 마음의 겨울을 지나 다시 노래를 시작한 안지영에게도 많은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건강 문제로 긴 휴식기를 가졌고, 심리 상담과 불면증을 견디며 앨범을 준비했다고 했다.

‘서울’은 그런 자신을 되찾아가는 기록이었기에 더더욱 개인적인 이야기일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듣는 이 입장에선, 그 모든 감정의 시작이 되었던 ‘우지윤과의 서울’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어느 한쪽만의 잘못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이야기다. 결국은 말이 조금 부족했고, 타이밍이 어긋났으며, 서로가 서로에게 충분하지 못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사실 하나는 남는다. 그 모든 찬란한 순간은 함께였기에 가능했다는 것.

이제는 각자의 길을 걷는 중이지만, 그 시절의 음악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 곁에 머물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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