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한 부모님 대신 품어준 하숙집 할머니를 20년만에 찾으러간 연예인


배정남에게 집은 늘 낯선 공간이었다.

부모님의 이혼 후 친할머니 손에 자라다가, 초등학교 시절부터는 홀로 하숙집 신세를 져야 했다.

그때 머물던 부산 범일동의 하숙집, 그곳에 차순남 할머니가 있었다. 피 한 방울 안 섞였지만, 누구보다 따뜻하게 손을 내밀어준 이였다.

운동회 날이면 가족 대신 꽃다발을 들고 나타났고, 친구와 싸워 억울하게 벌을 섰을 땐 “엄마 없는 애라고 무시하느냐”며 나서준 사람도 할머니다.

그렇게 초등학교 3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 배정남에게 차순남 할머니는 사실상 유일한 보호자였다.

형편은 녹록지 않았다. 고등학교 3학년, 다른 친구들이 진로를 고민할 때 배정남은 가장 먼저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시급 2050원짜리 자동차 부품 공장에서 하루 종일 서서 일했다. 병원비도 아까워 치료 한 번 제대로 받지 못했다. 그 와중에도 대학에 가고 싶었다.

우여곡절 끝에 추가 합격 통보를 받았지만, 등록금 262만 원이 발목을 잡았다.
친척들에게 손을 내밀었지만 돌아온 건 거절뿐이었다.

결국 가장 친한 친구의 도움으로 입학은 했지만, 교재비와 재료비조차 감당하기 어려워 한 달 만에 자퇴했다.

배정남은 훗날 이 시절을 떠올리며 “부모님이 안 계시다는 현실이 처음으로 서럽게 다가온 때였다”고 털어놓았다.

2018년 SBS <미운 우리 새끼>를 통해 배정남은 차순남 할머니를 다시 찾았다.

과거 하숙하던 집을 찾았지만 이미 사람이 살지 않는 상태였고, 동네를 돌며 사람들에게 수소문했다.

어렵게 찾은 병원, 휠체어에 앉은 할머니 앞에서 배정남은 결국 눈물을 쏟았다.

“할머니가 내 국민학교 졸업식 날, 꽃다발 들고 왔잖아요. 기억나요?”

“기억나지. 친구랑 싸워서 네가 벌 서 있을 때, 엄마 없다고 무시하냐고 내가 가서 뭐라 했잖아.”

그날의 대화는 오랜 시간 흐른 뒤에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 있었다.

배정남은 할머니 손을 꼭 붙잡고, 너무 늦게 왔다며 연신 사과했다. 할머니는 오히려 “이렇게라도 찾아줘서 고맙다”고 답했다.

이후에도 배정남은 종종 병원을 찾아가 안부를 전했다. 함께 식사도 하고, 손을 잡고 옛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2023년 말, 할머니는 세상을 떠났다.

“조금만 더 계실 줄 알았는데…” 배정남은 할머니가 모셔진 사찰을 찾아 한과와 신발을 준비해 올렸다.

“하늘에서는 아프지 마시고, 울 아버지랑 같이 건강하게 있으세요. 자주 올게요.”

그가 남긴 말은 짧았지만, 오랜 시간 묵혀왔던 그리움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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