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대문구 불광동, 다섯 자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말단 경찰이었고 어머니는 미용 일을 했다. 형편이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가족은 늘 서로를 향해 열려 있었다.
초등학교 입학은 빠른 나이였지만, 이유는 간단했다. 유치원조차 보내기 어려운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자전적 수필집에서 “어머니는 늘 부업을 달고 살았다”고 회고했다. 조기입학이라기보다, 그저 제 나이에 학교에 간 것뿐이었다.
아나운서를 꿈꾸게 된 계기는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KBS의 동요 경연 프로그램 현장에 따라갔다가, 노래 부르는 아이들보다 무대 위 진행자에게 마음이 빼앗겼다.
방송반에 들어간 것도, 대학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한 것도 모두 방송국으로 향하는 길 위의 선택이었다.
KBS 입사는 결코 쉽지 않았다. MBC 최종 면접에서 고배를 마셨고, KBS에서도 한 차례 탈락을 경험했다.
첫 합격자 명단에는 없었지만, 리포터 생활을 거쳐 1989년 공채 16기 아나운서로 이름을 올렸다.
첫 TV 프로그램은 그녀가 어린 시절 감탄했던 ‘누가 누가 잘하나’의 후속 프로그램이었다.
입사 후, 오랜 시간 뉴스보다 ‘현장’에 가까운 프로그램을 맡았다.
‘6시 내고향’, ‘TV는 사랑을 싣고’, ‘아침마당’, ‘인간극장’…
그렇게 그녀는 매일 아침 안방에 앉아 사람들 이야기를 듣고, 그 삶을 받아 적었다.
18년간 ‘아침마당’을 진행하면서, 수많은 사연을 품었고 그중 많은 이들이 이금희라는 이름 석 자에 따뜻한 감정을 품게 됐다.
제작진의 교체 통보로 프로그램에서 물러났을 때, 시청자 게시판엔 단 이틀 만에 수백 개의 하차 반대 글이 올라왔다.
‘아침마당’은 무려 18년을 진행했다.
세련되지 않아도, 강하지 않아도,조용하고 따뜻하게 말 걸 듯 진행하는 방식은 오히려 오랫동안 사랑받는 이유가 됐다.
프리랜서로 전향한 이후, 삶은 조금 더 유연해졌다.
늦은 나이에 다이어트를 성공하고 백화점 CF도 찍었고, ‘라디오스타’ 같은 예능에서 방탄소년단 팬심을 고백하기도 했다.
“뷔 같은 얼굴 좋아해요. 저는 얼굴만 봐요.” 스튜디오는 웃음바다가 됐다.
웃음 이면에는 씁쓸한 경험도 있었다.
연애 상대에게 ‘잠수 이별’을 당한 이야기, 짝사랑했던 선배 아나운서와 결혼을 생각할 정도로 진지한 관계였지만 결국 이별하게 된 이야기까지.
이금희는 “연애하면 다 퍼주는 스타일이다”라며, 호프집에서 오징어나 땅콩을 다 손질해주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설명했다.
뼈아팠던 이별을 수 차례 경험했던 그녀이지만, 연애에 대한 마음은 여전히 열려 있다.
결혼에 대한 생각은 서서히 사라졌지만,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고.
이금희는 여전히 ‘미스’다.
고요하고 단단한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을 채우고 있다.
모든 사진 출처; 이미지 내 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