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월, 에릭과 한지민은 MBC 드라마 ‘늑대’의 주연으로 호흡을 맞추고 있었다.
극 중, 차에 치일 뻔한 여주인공을 남자 주인공이 구해내는 장면을 촬영하던 중, 예상치 못한 사고가 벌어졌다.
심야 시간, 서울 을지로 인근에서 진행된 촬영이었다.
돌진해오던 스턴트 차량이 제때 멈추지 못했고, 촬영에 임하던 에릭과 한지민은 차량에 그대로 부딪히고 말았다.
그 순간, 에릭은 직감적으로 위기를 느끼고 한지민을 온몸으로 감싸며 자신이 대신 충격을 흡수했다.
차량에 치인 두 사람은 본네트와 앞유리 사이로 튕겨나갔고, 다행히 한지민은 비교적 가벼운 타박상으로 그쳤지만 에릭은 허리, 골반, 무릎 등에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허리 MRI 검사 결과 요추간판탈출증 진단을 받아 향후 병역 판정에서 공익근무 판정을 받게 됐을 정도였다.
이 사고로 인해 드라마 ‘늑대’는 방송 3회 만에 조기 종영됐다.
두 배우 모두 드라마 복귀를 위해 노력했지만, 부상 정도가 심각했고 치료와 회복에 시간이 필요했다.
방송사 입장에서도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제작을 강행하긴 어려웠다.
드라마가 처음 방영됐을 당시, 신선한 설정과 두 사람의 케미스트리로 인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었기에, 시청자들의 아쉬움도 컸다.
방송사 입장에서도 작품 중단은 유례없는 일이었고, 촬영장 안전 문제에 대한 지적이 이어졌다.
사고로 한동안 각자의 회복에 집중했던 두 배우는 약 6개월 뒤 SBS 수목드라마 ‘무적의 낙하산 요원’에서 다시 호흡을 맞추게 된다.
작품 속에서도 특수정보기관 NST에서 일하게 된 두 캐릭터가 점차 가까워지는 서사를 그리고 있었고, 현실에서도 조심스러우면서도 따뜻한 재회가 이뤄졌다.
제작발표회에서 한지민은
“사고 이후 처음 만났을 때 안부를 묻는 그 한마디가 오래 기억에 남는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이후에도 두 배우는 각자의 자리에서 활약을 이어갔고, 당시의 경험은 여러 인터뷰와 회상 속에서 다시 언급되곤 했다.
드라마를 계기로 인연을 맺은 두 사람은 이후로도 서로의 촬영장에 커피차를 보내거나, 행사장에서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등 꾸준히 우정을 이어왔다.
위험이 닥친 순간, 에릭은 머뭇거리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한지민을 끌어안고 자신이 먼저 부딪히는 쪽을 택했다.
그 결정 하나로 상대의 부상은 줄고, 자신은 큰 고통을 감수하게 됐다.
치료와 재활, 병역 판정까지 이어진 부상은 에릭에게 쉽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정작 본인은 그 일에 대해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짧게 끝난 작품이었지만, 그 안에서 보여준 에릭의 용기와 책임감은 오래도록 회자되며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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