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미는 1985년 춘천 MBC 아나운서로 시작해 SBS 공채로 입사한 후, 한국 최초의 여성 프로야구 중계 캐스터로 이름을 알린 인물이다.
방송계에서는 늘 활기차고 명확한 목소리로 주목받았지만, 그 이면엔 전혀 다른 무게감의 삶이 있었다.
지금 그녀는 월세 네 채를 동시에 관리하며, 수천만 원에 달하는 생활비를 홀로 감당하고 있다.
남편 황능준 씨와 결혼한 지 28년, 생활비를 마지막으로 받은 건 20년 전이라는 말이 방송에서 나왔을 정도다.
35살까지 미혼이었던 윤영미는 수많은 소개와 선을 받았다. 좋은 조건의 남자도 많았고, 누가 봐도 안정적인 삶을 보장하는 만남도 있었다.
하지만 마음이 따라가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만난 황능준 씨는 세상 사람들과 조금 달랐다.
봉사활동을 하며 살아가는 모습, 다정하지만 조용한 말투에 안도감을 느꼈다.
그런데 막상 결혼하고 보니, 현실은 쉽지 않았다.
황 씨는 목사로서 탈북민 사역과 농촌 유통 사업에 몰두하며 돈보다는 사람을 돌보는 삶을 택했다.
두 아들의 유학비, 자동차 유지비, 네 채의 월세… 매 달, 수 천 만원에 달하는 그 모든 지출을 혼자 감당했다.
문제는 남편이 이 상황을 특별히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오히려 ‘돈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는 태도로 일관했다.
윤영미는 한 인터뷰에서 “주유소 아르바이트라도 해보라고 말한 적 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미안하다”는 말뿐이었다.
지금 윤영미는 서울과 제주를 오가며 월세 네 채의 살림을 꾸려간다. 자동차만 해도 유지비가 한 달 200만 원. 방송 수입만으로는 빠듯해졌다.
그래서 그는 커머스 방송, 강연, MC 활동 등 뭐든 가리지 않고 일한다.
스스로 말하길, “쉴 수 없어서 일하는 게 아니라, 멈추면 삶이 무너질까 무서워서 일하는 것”이라고 했다.
가끔은 남편에게 서운함을 표현한 적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기대보다 포기가 먼저 앞선다고 한다.
다만 “나 아니었으면 이 가족 어떻게 살았을까” 싶을 때, 오히려 묘한 뿌듯함이 밀려온다고 했다.
몇 년 전부터 두 사람은 졸혼 상태로 지내고 있다. 황 씨는 제주에서, 윤영미는 서울에서 지낸다.
각자의 삶을 존중하되, 필요할 땐 곁에 있다.
최근 SNS에 올라온 글에는 솔직한 마음이 담겨 있었다.
“월세가 50만 원 올랐다는 말에 한동안 멍했다. 나만 왜 이렇게 사는 걸까, 다 내려놓고 싶을 만큼 지쳤다.”
그러다 친구가 “너 같은 사람도 누군가에겐 부러움의 대상일 수 있어”라고 말해줬고, 그 한마디에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고 한다.
“2년 뒤, 형편이 어떻게 바뀔지 아무도 모른다. 생각의 방향을 바꾸니 조금은 숨이 쉬어졌다.”
윤영미는 오늘도 일터로 향한다. 여전히 외벌이지만, 여전히 웃는다.
모든 사진 출처: 이미지 내 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