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찢어지게 가난해서.. 새옷 입고가면 도둑취급 받았던 초등학생은 먼훗날


장동민은 초등학교 1학년 무렵부터 부모님과 떨어져 할머니 손에 자랐다.

서울로 올라온 가족은 주방도, 화장실도 없는 작은 판잣집에 다섯 식구가 함께 살았다.

천장을 쥐가 다니다 떨어지는 일도 다반사였고, 집이라는 공간은 편안하지 않았다.

형편이 어려워 옷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고, 체육복 한 벌로 계절을 버텨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어렵게 장만한 점퍼 한 벌이 인생을 뒤흔든다.

신이 나서 점퍼를 입고 학교에 갔지만, 공교롭게도 같은 반 친구가 전날 입고 왔던 옷을 분실한 상태였다.

선생님은 장동민을 도둑으로 오해했고, 아무리 해명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점심 시간내내 선생님에게 두드려 맞았던 장동민.

결국 그는 거짓 자백을 해야 했고, 그렇게 어머니의 선물은 뺏기고 말았다.

자존감에 상처를 입은 어린 시절, 장동민은 한 가지 다짐을 한다.

“내가 우리 집을 일으켜 세우겠다.”

부모는 새벽부터 밤까지 일하는 성실한 사람들이었지만,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장동민은 일찍 철이 들었고, 돈을 벌기 위해 연예인의 길을 꿈꾸게 된다. 다만 잘생긴 외모가 아니었기에, 스스로 “개그맨밖에 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연예인이라는 꿈을 향해 달려간 그는 마침내 데뷔에 성공했고, 하늘이 내린 천부적인 재능으로 대중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방송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현실을 마주하며, 더 넓은 세계로 발을 내딛게 된다.

장동민은 일찍부터 사업에 뛰어들었다.

첫 도전은 출장 세차 사업 ‘그까이카’였다. 흐름이 맞지 않다고 판단하면 과감히 접는 결단력도 있었다.

이후 전국 100여 개 매장을 가진 PC방 프랜차이즈를 비롯해 홈 케어 서비스, 친환경 기술까지 다양한 분야로 활동을 넓혀갔다.

특히 페트병 라벨 제거 기술로 특허까지 출원하며 사회적 문제 해결에도 발을 담갔다.

그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포커 플레이어로도 활약하며 아시안 포커 챔피언십에서 우승, 상금 5천만 원을 거머쥐는 성과도 냈다.

올림픽 정식 종목 채택을 목표로 국가대표 도전까지 꿈꾸고 있다.

“힘들었던 기억이 오늘의 원동력이 됐다고 말하는 사람.”

장동민은 그렇게, 여전히 자신만의 속도로 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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