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석에게 어린 시절은 평범하지 않았다.
태어나자마자 어머니는 집을 떠났고, 아버지는 생계를 위해 집을 비워야 했다. 그렇게 김민석은 자연스럽게 할머니 손에 자랐다.
두 사람은 가족 그 이상의 관계였다. 할머니는 재혼의 기회도 손자의 앞날을 위해 포기했고, 김민석은 할머니가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든든했다.
“딱 40살 차이인 할머니와 단둘이 살았다”는 그의 고백에는, 어떤 감정도 덧붙일 필요 없을 만큼 진심이 묻어났다.
할머니는 장애 판정을 받았고, 김민석은 무조건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배달, 퀵서비스, 음식점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다.
전공이 호텔조리였던 덕분에 주방 보조로도 일했지만, 마음속엔 늘 다른 삶을 향한 꿈이 있었다.
2011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나간 ‘슈퍼스타K3’에서 얼굴이 알려졌고, 이듬해 ‘닥치고 꽃미남 밴드’로 본격적인 배우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태양의 후예’, ‘닥터스’, ‘피고인’ 등 화제작에 잇따라 출연하면서 인지도를 쌓았고, 드라마 속 익숙한 얼굴이 되었다.
이름이 알려진 후에도 김민석은 늘 할머니부터 챙겼다.
방송에서 여러 차례 밝혔듯, 가장 먼저 드린 선물은 체크카드였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카드 사용 내역에서 확인된 ‘1만 8천 원’이었다.
할머니는 김민석이 힘들게 번 돈을 쓰는 게 아까워 며칠이고 카드를 쓰지 않았다.
그러자 김민석은 “하루에 한 번씩 안 쓰면 카드가 없어진다”는 말까지 지어냈다.
그렇게 할머니는 몇천 원씩 조심스레 쓰기 시작했고, 어느 날 아귀찜 1만 8천 원을 결제한 걸 보고 김민석은 눈물을 흘렸다.
그 돈은 단순한 금액이 아니라, 평생을 아껴온 할머니가 처음으로 ‘나를 위해’ 쓴 소비였기 때문이다.
군 복무 시절 첫 휴가를 받아 가족사진을 찍으러 간 것도, 여느 연예인과는 다른 선택이었다.
할머니와 어깨를 맞대고 찍은 사진 한 장이, 김민석에겐 “가장 의미 있는 일”이었다.
“할머니가 TV에 나오는 나를 볼 때마다 신기해하신다”고 했다.
자신을 키워준 사람이 좋아하는 모습이 되고 싶었기에, 이 길을 선택한 것일지도 모른다.
연예계 활동과 병행하며 배달일을 하고, 쉬는 날에도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을 이어가던 시절.
할머니는 늘 걱정했고, 김민석은 그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더 열심히 살아왔다.
어릴 적 마음속에 새긴 문장 하나,
“할머니가 행복하게 지내는 걸 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말은, 지금도 김민석의 삶을 이끄는 문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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