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동아오츠카의 장수 브랜드 ‘오란씨’가 무려 20년 만에 TV 광고를 재개했다.
그 첫 모델로 낙점된 이는 당시 주가를 올리던 톱스타 A였다.
상큼함과 섹시함을 겸비한 이미지로 브랜드와 찰떡같은 궁합을 기대했지만, 촬영 당일 A의 돌연한 펑크와 잠적 사태로 광고주는 큰 혼란에 빠졌다.
급히 대체 모델을 찾아야 했던 제작진은 발상을 전환했다.
오히려 신선한 이미지의 신인을 내세워 ‘복고와 트렌디함’을 동시에 잡아보자는 아이디어.
그렇게 선택된 이름이 김지원이었다.
당시 김지원은 빅뱅과 함께한 ‘롤리팝’ 광고에서 얼굴을 살짝 알린 신예였다.
CF 속 커다란 롤리팝에 가려진 얼굴이 오히려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한 덕분에 ‘롤리팝걸’이라는 별명을 얻은 상태였다.
이 ‘숨겨진 카드’가 우연처럼 등장해 오란씨 광고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광고는 공개되자마자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교복을 입고 70~80년대 복고 스타일을 선보이던 김지원은 디스코를 추다가 현대적인 의상으로 전환하며 다양한 세대의 공감을 끌어냈다.
광고는 그 자체로 ‘콘셉 승리’였고, 김지원은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다.
당시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과거 오란씨의 전설적 모델 김윤희를 떠올리게 한다는 평도 있었다.
브랜드 이미지에 완벽하게 부합한 신선한 얼굴, 김지원은 그렇게 ‘오란씨걸’이라는 타이틀을 손에 넣었다.
광고 이후 드라마와 영화, CF 제의가 잇따랐다.
단순한 운이라기보다, 가능성을 간파한 선택이었고 김지원은 그 기대를 충실히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1992년 10월 19일 서울 출생. 어릴 적 미국 시카고에서 1년간 거주했고, 귀국 후 자퇴와 검정고시를 거쳐 고등학교 진학을 준비했다.
그러던 중 중3 때 길거리 캐스팅을 통해 연예계에 입문하게 된다.
첫 소속사인 라이온미디어에서 연기, 노래, 안무, 일본어까지 두루 배우며 데뷔를 준비했다.
이 시기의 경험 덕분에 일본어 실력도 수준급이며, 음악적 감각도 두드러지는 편이다.
광고를 통해 얼굴을 알린 김지원은 곧바로 드라마에 진출한다.
2011년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에서 본격적인 연기 데뷔를 알렸다.
2013년 ‘상속자들’의 유라헬 역으로 인지도를 넓혔고, ‘태양의 후예’에서는 군의관 윤명주로 인상 깊은 연기를 펼쳤다.
이어 ‘쌈, 마이웨이’에서는 주연 최애라 역을 맡아 감정선을 촘촘히 그려내며 중심 배우로 확실히 자리 잡았다.
2022년 JTBC ‘나의 해방일지’에서는 말수 적은 염미정 캐릭터를 차분하고 섬세한 톤으로 연기해 극찬을 받았다.
감정을 최소한의 언어로 표현하는 내면 연기를 통해 김지원의 연기 스펙트럼이 얼마나 넓어졌는지를 보여준 작품이었다.
tvN ‘눈물의 여왕’에서 퀸즈 그룹의 재벌 3세 홍해인 역으로 다시 한 번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김수현과의 호흡, 그리고 요동치는 감정선을 디테일하게 그려내며 단순한 ‘비주얼 여주’를 넘어선 존재감을 증명했다.
우연처럼 찾아온 ‘오란씨걸’이라는 첫 기회.
하지만 그 기회를 붙잡고 스스로를 증명한 시간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대타였던 한 번의 광고가, 김지원이라는 배우의 커리어를 시작하게 만든 서사의 출발점이었다.
모든 사진 출처: 이미지 내 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