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녀사이인거 정말 몰랐던 원로배우와 유명가수


1970년대, 스크린 속 병태는 그 시절 청춘의 얼굴이었다.

영화 바보들의 행진 속 순박하고 허무한 눈빛의 청년, 하재영.

그리고 그로부터 수십 년 뒤, ‘쥬얼리’의 막내 래퍼로 무대 위를 누볐던 하주연.

겉으로는 전혀 다른 세대와 무대에서 활약했지만, 이들은 같은 피를 나눈 부녀였다.

하주연&하재영

하주연은 태어날 때부터 이름이 없었다.

부모가 워낙 애정 어린 애칭으로 ‘쭈쭈’라 부른 탓에 병원 차트에도 그대로 ‘쭈쭈’라고 기록됐을 정도다.

덕분에 가족들에게는 아직도 ‘쭈쭈’라는 이름이 더 자연스럽다.

어린 시절 미국 이모 집에 놀러가 사촌들과 롤러스케이트를 타던 사진, 유치원 졸업식 사진 속 앞니 빠진 미소까지…

어릴 적 그녀는 장난기 가득한 말괄량이였다.

하지만 동시에,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발레를 배우고, 국립발레단 문화학교에서 강수진과 무대에 선 경험까지 있는 성실한 아이이기도 했다.

이런 어린 시절을 보낸 하주연이 결국 선택한 길은 무대였다. 그리고 그 무대는 ‘쥬얼리’라는 아이돌 그룹이었다.

미국 유학 시절, JYP 오디션에서 1등을 차지했던 하주연은 잠시 가수 비와 같은 소속사가 될 뻔했지만, 아버지와 인연이 있는 매니저 회사의 제안으로 진로를 바꿨다.

당시엔 아쉬움이 남았지만, 결국 쥬얼리로 데뷔하며 존재감을 드러냈고, ‘One More Time’의 폭발적인 성공으로 주목을 받았다.

하재영은 딸의 활동을 반대했던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든든한 지지자다.

“쥬얼리에서 랩 하는 아이가 내 딸이다”라며 지인들에게 자랑을 아끼지 않았다.

딸이 새 앨범을 낼 때면 누구보다 먼저 받아들고 환하게 웃던 그의 모습은, 무대 위 스타가 아닌 한 아이의 아버지 그 자체였다.

하주연에게 아버지는 무뚝뚝한 가장이 아닌, 손을 꼭 잡고 산책하던 사람이었다.

어릴 적 한남동 집 뒷산을 함께 오르며 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손에서 전해지던 체온을 기억할 만큼 따뜻한 사람.

자매는 줄넘기 대회 1, 2등을 차지할 만큼 다정했고, 미국에서 자립하며 지낸 언니는 동생에게 예쁜 선물을 보내오기도 했다.

이렇게 서로를 향한 정이 깊었던 가족 안에서, 하재영은 돈보다 마음을, 실속보다 신의를 중요하게 여겼다.

“세입자가 월세를 주지 않아 점포를 팔았고, 주식으로 전 재산을 잃었지만, 한 번도 남에게 아쉬운 부탁은 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그의 태도엔 오랜 연기 인생이 깃들어 있었다.

인터뷰 내내 아버지를 바라보는 하주연의 눈빛엔 아이돌의 화려함이 아닌, 딸로서의 순수한 애정이 담겨 있었다.

무대를 장악하던 래퍼 하주연이 아닌, 조용히 아버지 옆에 앉아 웃던 소녀의 모습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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