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1월, 삼성 사장단에게 이건희 회장이 조용히 건넨 말.
“불우이웃을 돕고, 그 활동 내용을 적어 나에게 생일 선물로 주면 좋겠다.”
그해부터 매년 1월 9일, 사장단은 ‘축 생신’이라 적힌 봉투 하나를 이 회장에게 건넸다.
그 안엔 비싼 선물도, 상장도 없었다. 오직 직원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나눈 손길들이 적혀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이 특별한 선물은 2014년, 이 회장이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지기 전까지 23년 동안 이어졌다.
한 해는 ‘임직원들이 격려금의 10%를 기부했다’는 내용이었고, 또 다른 해는 어린이병원에 모인 성금이었다.
봉투를 받는 순간, 이 회장은 어린아이처럼 웃었다고 한다.
이 일화를 직접 전한 관계자는 “그 모습이, 가장 진심이 담긴 생일 축하였다”고 기억했다.
이건희 회장은 사회공헌을 말할 때 늘 ‘조용히, 그러나 꾸준히’를 강조했다.
“남이 모르게 음덕을 쌓듯 어려운 이웃을 도우라.”
이 말은 단순한 미덕이 아니라, 삼성 경영의 한 줄기 철학이었다.
유족들은 이 뜻을 그대로 이어가기로 했다. 1조 원의 의료 분야 기부, 2만3000여 점에 달하는 미술품 기증, 부산 해운대 장산 일대 임야 3만8000㎡까지 사회에 환원했다.
해운대구가 장산구립공원을 조성하려던 사정을 들은 뒤, 선뜻 기부를 결정한 것도 유족 쪽이었다.
이 회장의 생전 기부 원칙은 단순했다.크게, 조용히, 그리고 미래를 향해.
이건희는 생전에 과학기술과 어린이 교육에 유독 마음을 많이 썼다.
2013년 새해 첫날, 사장단을 만난 자리에서 “국가 미래기술을 위해 담대하게 지원하라”고 말했고,
삼성은 그해부터 10년간 1조5000억 원을 기초과학 연구에 투자하는 ‘미래기술육성사업’을 시작했다.
아이들을 위한 지원도 일관됐다.
이번 유족 기부 중 3000억 원이 어린이병원으로 향했다는 사실 역시, 생전 행보와 닿아 있다.
1997년 펴낸 에세이집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의 인세 전액을 불우이웃돕기에 기탁했던 일화도 있다.
외환위기로 나라 전체가 힘들었던 그 시기, “기다리지 말고 지금 먼저 내자”며 판매 한 달 만에 1억7000여만 원을 내놓았다.
이건희는 거창한 말을 남기진 않았지만, ‘기부는 조용히 실천하는 것’이라는 메시지만큼은 누구보다 뚜렷하게 남겼다.
그리고 지금, 그 철학은 여전히 누군가의 병실과 학교, 공원 속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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