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막염 따위야..” 야밤에 병원 탈출해 붕대감고 미스롯데 대회 출전한 여배우


단아한 인상과 또렷한 목소리로 잘 알려진 김미숙.

회사에 다니던 시절, 연기에 대한 마음을 놓지 못해 ‘미스 롯데’에 지원서를 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맹장염이 복막염으로 번지며 급하게 수술을 받게 된 것.

몸이 회복되기도 전에 1차 합격 소식이 전해졌고, 고민 끝에 붕대를 동여맨 채 오디션장에 나섰다.

겨우 걸음을 옮길 수 있는 상태였지만, 무대 앞에 섰다.

면접에서 수술 사실을 털어놨고, 예상치 못한 이야기에 심사위원들도 놀랐다고 한다.

최종 결선까지 올랐지만 낙방.

하지만 그 도전은 끝이 아닌 시작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KBS 공채 탤런트로 선발되며 연기자의 길이 열렸다.

어릴 적부터 목소리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고등학생 시절, 유학 간 친구에게 보낼 녹음 테이프를 만들다가 자신의 목소리를 처음 객관적으로 듣게 됐다. 그때 느낀 건, 말 한마디에 담긴 힘이었다.

이후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자로 오랜 시간을 보냈다.

‘세상의 모든 음악’, ‘한밤의 인기가요’ 등 다양한 방송에서 목소리로 위로를 전했다.

1980년대 후반, 배우와 DJ를 병행하면서 동시에 유치원 운영까지 시작했다.

1987년 서울 마포에 ‘사랑유치원’을 세우고 교육 현장에 직접 들어갔다.

운영에 대해 후원자가 있다는 말도 있었지만, 오랜 시간 모아둔 돈과 가족의 도움, 그리고 살던 집을 정리하며 만든 공간이었다.

언제까지나 연기만 할 수 없다는 현실을 스스로 인식하고 준비했던 결정이었다.

연기와 라디오, 교육 일을 동시에 해내던 시기. 그만큼 수입도 컸다.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세무서 직원에게 마포구에서 세금을 가장 많이 내는 사람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1989년 기준, 월 수입이 천만 원을 넘겼다. 당시 동생의 월급이 40만 원이었던 걸 감안하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간다.

결혼 적령기를 훌쩍 지난 시절, 나이에 대한 시선을 재치 있게 넘겼다. 어느 인터뷰에서는 ‘골드미스’라는 표현을 직접 만들었다고 했다.

일도, 삶도 어느 정도 알게 된 나이. 지금이 오히려 가장 황금기처럼 느껴졌다는 의미였고, 현실을 받아들이며 던진 농담 같은 자기표현이었다.

SBS 라디오 ‘아름다운 아침’ 진행을 맡고 있을 때, 초대손님으로 작곡가이자 음악평론가였던 최정식이 출연했다.

라디오를 통해 이어진 인연은 연애로, 그리고 결혼으로 이어졌다.

같은 해, 드라마에서 중도 하차하며 자존감이 크게 흔들렸던 시기. 옆에서 함께 견뎌준 사람 덕분에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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